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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쿠지로의 여름의 줄거리, 감독의 연출, 개인적 견해

by aria339 2025. 6. 30.

 

 

1999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菊次郎の夏)은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감성 드라마입니다. 이 영화는 여름 방학을 맞이한 소년과 한 중년 남성이 함께 떠나는 특별한 여정을 중심으로,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따뜻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단순한 로드 무비의 틀을 넘어서 인생의 쓸쓸함, 성장, 가족의 의미를 담담히 전하는 이 작품은 기타노 감독 특유의 유머와 정서가 녹아든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영화 줄거리 

영화의 주인공은 9살 소년 ‘마사오’입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그는 방학이 시작되었지만 놀 친구도, 부모도 곁에 없습니다. 우연히 친구 어머니에게 생모가 도쿄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마사오는, 그 어머니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이때 동네에 사는 중년 남성 ‘기쿠지로’가 억지로 동행하게 되면서, 이 영화의 특별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기쿠지로는 한마디로 무책임하고 세속적인 인물입니다. 도박과 술에 찌들어 있는 인물이지만, 어쩌다 보니 순진한 소년의 여행길에 동참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며 마사오를 대하지만, 여정을 거듭할수록 점차 마음을 열고 마사오를 위해 진심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길 위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는 유쾌하면서도 때론 슬픕니다. 오토바이족, 수영장 장면, 텐트 속 밤하늘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영화 전체에 흩어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와 눈물을 번갈아 짓게 만듭니다.

결국 마사오는 친엄마를 만나게 되지만, 그녀는 이미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마사오를 외면합니다. 이 사실에 큰 상처를 입은 마사오를 기쿠지로는 묵묵히 감싸주며, 그동안 소년에게는 한 번도 없었던 ‘어른의 따뜻함’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한 채 돌아오게 됩니다.


감독의 연출 

기타노 다케시는 기존의 작품들에서 냉소적이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자주 보여줬던 감독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이미지를 내려놓고, 좀 더 서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을 담았습니다. 특히 ‘폭력’ 대신 ‘유머’를 선택한 점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물론 기타노 특유의 건조하고 뚝뚝 끊어지는 대사와 구성은 여전하지만, 그 속에서 인간적인 따뜻함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옵니다.

첫째, 화면 구성과 리듬이 매우 독특합니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대사가 많지 않으며, 장면과 장면 사이의 ‘정적’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합니다. 주인공들이 여행 중 머무는 장면에서는 종종 음악과 이미지로만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하는데, 이는 관객이 직접 감정을 느끼고 해석하게끔 여백을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둘째, 영화음악의 사용이 탁월합니다. 특히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OST는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감싸며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단순한 피아노 선율과 여유로운 템포는 여행이라는 테마와 잘 어울리며, 인물 간의 감정 변화에 섬세하게 반응합니다. 음악은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배우’처럼 기능하며 관객의 감정선을 이끕니다.

셋째, 인물 묘사가 감정적이기보다는 간결하고 묵직합니다. 기쿠지로는 처음엔 전형적인 무례한 어른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대사를 통한 직접적인 설명보다는 행동과 상황으로 전달되며, 감동을 배가시킵니다. 마사오 역시 감정 표현이 적지만, 그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내면의 외로움과 성장 과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여름의 감성을 탁월하게 살려냅니다. 햇살 가득한 골목, 풀벌레 소리, 어딘가 먼 여름 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풍경은 일본 특유의 정서를 잘 담고 있으며, 관객에게도 잊지 못할 여름을 선사합니다.


개인적 견해 

「기쿠지로의 여름」을 보고 난 후 가장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던 장면은, 기쿠지로가 소년을 위해 계속해서 실없는 장난을 치고, 게임을 만들고, 익살스럽게 춤을 추는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어린 시절 외로웠던 자신의 과거를 마사오에게 반복시키고 싶지 않다’는 진심이 숨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치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마사오는 어머니에게서 외면당한 아픔을 겪고, 기쿠지로는 자신의 젊은 날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감정을 배우게 됩니다. 두 인물 모두 이 여름을 통해 조금씩 바뀌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가족’이라는 혈연 중심의 개념에서 벗어나, 누군가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가족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기쿠지로는 마사오의 친부도 친척도 아니지만, 이 여름 한 철 동안 누구보다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어 줍니다. 그 사실은 어떤 제도적 관계보다도 더 따뜻하고 깊이 있는 유대처럼 느껴졌습니다.

감정의 과잉 없이, 절제된 표현 속에서 더 큰 울림을 전하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연출은 탁월했고,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그 감정을 배가시켜 주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말이 없어도 그동안의 여정을 모두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쿠지로의 여름」은 인생에서 어느 한 시점, 특별했던 사람과의 기억을 되새기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누군가에게도 그런 ‘기쿠지로 같은 존재’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잊고 있었던 여름의 감성과 함께, 관계의 본질에 대해 돌아보게 해주는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